Cinema

그때 그 사람들...... Bobby...

11월... 2010. 1. 18. 14:05

 

Bobby(2006)

 

한 때 미국의 꿈이라 불렸던 이가 있었다....

한 사람이 타인과 대중들에게 얼마만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었던 이였다....

헐리우드의 쟁쟁한 배우들이 그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출연 한 영화..

 

다저스의 드라이스데일이 피츠버그를 상대로 6연승 완봉승에 도전하던 날.....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던 그날......

어찌 되었던 간에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고..... 그들의 인생 또한 변화를 맞이했을것이다...

참 좋은 배우들이 출연한 참 좋은 영화라 해고 싶지만....

성형으로도 이겨내지 못한 세월의 흔적들은 괴물의 연기를 보는듯 하다....

좋건 싫건....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무척 헌신적인 영웅을....

케네디가의 꿈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이다..

 

로버트 F. 케네디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Robert Francis Kennedy, 1925년 11월 20일 ~ 1968년 6월 6일)는 미국의 법조인·정치인이다.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동생이다. 애칭 바비 케네디(Bobby Kennedy), 이니셜 RFK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초기 생애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51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고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다. 1952년 형 존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도왔고, 부친 조지프 P. 케네디와 형의 도움으로 NIGGER 상원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53년 반공 정치인으로 알려지게 되는 조지프 매카시가 이끄는 상원의 위원회의 법률고문으로 들어갔다. 1957년부터는 지미 호파가 이끄는 노동계의 비리를 조사하는 상원 위원회의 법률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60년에는 형 존의 대통령 선거운동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선거운동을 관장하였다.


법무장관

케네디 대통령 형제. 좌측부터 로버트(바비), 에드워드(테드), 존(잭)형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연방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1월 케네디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법무장관으로 재직하게 되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형제가 장관으로 재임하게 되었는데, 경험도 많지 않은 35세의 젊은 법조인을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법무장관으로 앉혔다 하여 안팎에서 족벌인사, 정실등용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여러 가지 개선사항을 관철시켜 초기의 비난을 잠재우고 미국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법무장관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남부지방에서 일어나던 인종차별을 철폐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다.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가 암살된 후에도 린든 존슨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다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964년 9월 법무부를 떠났다.


상원의원
1964년 11월 뉴욕 주에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상원의원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미 상원의원이 된 동생 에드워드도 매사추세츠 주에서 같이 당선되어 형제가 동시에 상원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상원에 진출한 후 민권법안의 통과에 큰 기여를 하면서 진보정치계의 존경을 받았고,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 정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암살과 사망 이후

로버트 케네디 기념비(알링턴 국립묘지)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여, 몇몇 주의 예비선거에서 승리하였다. 6월 4일 캘리포니아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비롯해 5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6월 5일 자정에 로스앤젤레스 앰배서더 호텔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그날 밤 주방 통로를 이용해 호텔을 떠나려 할때 로버트 케네디의 이스라엘 지지에 분노한 요르단 이민자이자 팔레스타인 학생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의 총격을 받아 8발을 총을 맞고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몸은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에 이은 그의 암살로 미국은 큰 충격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민주당은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권을 공화당에 빼앗겼다.

그의 시신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형 옆에 묻혔다. 그와는 별도로 각지에 그를 기념하는 건물과 기념물이 생겼다.

2001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탄생 76주년을 기념하여 법무부 청사 건물의 이름을 로버트 F. 케네디 법무부 청사로 바꿨다.

격동의 1960년대를 풍미했던 그는 지금도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정치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부인 에설 스케이클과의 사이에 11명이나 되는 자녀를 남겼으며, 그의 자녀 중 몇몇은 정계와 법조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다음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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